영진위의 임무는 정부 비판 영화 죽이기?

김영우 | 2014/12/04

지난 9월 1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발표한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 심사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영진위가 지방의 소규모 예술영화관들을 대거 탈락시키고 대신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을 신규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오마이뉴스 ‘의지 있는 예술영화관 대신 대기업 멀티플렉스라니’). 영진위는 심사 총평에서 지원금 의존율과 관객 점유율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영진위가 직영하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플러스’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을 거부한 사실을 놓고 보면 이런 설명에 의구심이 든다. 지원금 의존율, 관객 점유율이 영진위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사항이라면 <다이빙벨>의 상영을 수용했어야 한다. <다이빙벨>은 개봉 첫 주 다양성 영화 개봉작 박스 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고 개봉 이후 3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12월 4일 현재 누적 관객 43,515명) 관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상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권력에 비판적 영화 상영한 영화관 대거 탈락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정부를 비판하거나 권력에 대항하는 내용의 영화들이 상영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띠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최근 3년간 정부와 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을 다뤄 주목을 받았던 영화 여덟 편을 선정하여 2014년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 심사에서 선정된 영화관과 탈락된 영화관의 상영 여부를 비교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영진위의 심사에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을만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정부와 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의 영화를 많이 상영한 영화관들은 대거 탈락되고 반대로 그런 영화를 전혀 상영하지 않거나 드물게 상영한 영화관들이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사에서 탈락한 다섯 개의 소규모 영화관들은 정부·권력 비판 영화 여덟 편 중 평균 6.4편을 상영했다. 반면 2013~2014년 연속 선정된 영화관들은 평균 3.5편을 상영했으며 2014년에 신규로 선정된 영화관들은 평균 1.6편을 상영했다. 심지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20개 영화관 중 세 군데는 단 한 편도 상영하지 않았다.

영진위의 롯데시네마 밀어주기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운영 목적은 수익에 있기 때문에 관객이 적게 드는 예술 영화나 정부 및 대기업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해서 사업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내용의 영화는 잘 상영하지 않는다. 올해 초 롯데시네마가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사망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상영관을 축소한 일이나 2013년 메가박스가 천안함 침몰 사건의 의혹을 다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중단한 일을 보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롯데시네마의 경우에는 <천안함 프로젝트>를 아예 단 한 곳에서도 상영하지 않았다.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요강’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의 목적은 ‘예술영화의 상영기회를 확대함으로써,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원 대상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아니라 소규모 예술영화관이 되는게 타당하다. 그런데 왜 영진위는 심사에서 소규모 영화관들을 탈락시키는 대신 롯데시네마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을까?

만약 영진위가 정부와 권력에 비판적인 내용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소규모 예술영화관이 아니라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진위의 롯데시네마 밀어주기는 올해에만 이례적인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오던 행보는 아니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2006년부터 2014년까지의 예술영화전용관 심사 결과 자료를 취합하여 롯데시네마와 나머지 영화관들의 지원금 증감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영진위의 롯데시네마 밀어주기가 2012년부터 이미 시작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만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의 전체 지원금이 2012년부터 점차 감소하면서 롯데시네마를 제외한 전체 영화관의 지원금 총합이 매년 감소하고 있는 반면 롯데시네마 영화관의 지원금 총합은 거꾸로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영화관들에 대한 지원금은 2012년에는 전년대비 약 9백만 원, 2013년에는 약 8천 6백만 원, 2014년에는 약 1억 4천 5백만 원 감소한데 반해 롯데시네마 영화관들에 대한 지원금은 2012년에는 전년대비 약 2천 2백만 원, 2013년에는 약 2천 3백만 원, 2014년에는 약 4천 9백만 원 증가했다. 다른 영화관들에 대한 지원금이 감소할수록 롯데시네마에 대한 지원금은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또한 지원 선정된 전체 영화관의 수가 2011년부터 매년 감소한 반면 롯데시네마는 반대로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영화관은 2011년 32개관에서 2014년 15개관으로 매년 줄어든 반면 롯데시네마는 2011년 1개관에서 2014년 5개관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 분석의 결과를 통해 영진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정부와 권력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를 많이 상영한 영화관들이 지원 심사에서 대거 탈락되고 반대로 적게 상영한 영화관들이 선정된 것은 우연일 수도 있다. 사회 비판적인 영화의 상영을 거부하는 롯데시네마가 영진위로부터 점점 더 많은 지원금을 받아가는 것도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우연이 반복되면서 규칙성이 발견된다면 우연을 넘어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추론하는 게 자연스럽다.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는 경향성이 단순히 우연들이 겹쳐서 나타난 착시인지 아니면 분명한 의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인지는 이후 영진위의 행보에서 어떤 규칙성이 이어지는지를 보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RAW 데이터 보기
2006~2014 예술영화관전용관 운용지원 사업 심사결과
예술영화전용관 정부·권력 비판영화 상영-2014 심사 기준
예술영화전용관 정부·권력 비판영화 상영-전체 영화관
예술영화전용관 운용지원 사업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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